성주간은 ( 종려주일 – 부활절을 의미 ) 시작되었습니다. 이 한 주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과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신 사건은 예수의 사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주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길에 종려나무 가지를 깔아드린 사실은, 우리가 흔히 왕족이나 고위 인사, 지도자들에게 베푸는 ‘레드카펫 대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 종려주일 “’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끝내고 통치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나는 갑옷을 입은 대장 &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통치하시며 로마의 점령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초라한 나귀를 타고 오신 겸손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경로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양문’을 통해 들어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은 제사 의식을 위해 성전 구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물 ( 짐승 ) 들이 통과하던 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초라하게 들어오셨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요. 예수님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였습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 이었습니다.
여기 그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어떻게 입성하셨는지, 그리고 양문이 성전과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1: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마태복음 21:2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러면 곧 나귀 한 마리가 그 새끼와 함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서 내게로 끌고 오라.
마태복음 21:3만일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께서 그것들을 쓰신다.’고 말하라. 그러면 그 사람이 즉시 보내리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이 짐승들이 그곳에 있을 것을 미리 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어 그 짐승들을 데려오게 하셨고, 혹시 묻는 사람이 있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라고 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이 짐승들의 주인을 알고 계셨으며, 주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짐승들을 보내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4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말하기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것이 구약성경의 이사야서와 스카랴서 두 권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두 선지자 ( 이사야 & 스카랴 ) 는 모두 유대 백성에게 예언했고, 그들은 이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경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마태는 여기서 우리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마태복음 21:5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말하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온유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인 어린 수나귀 위에 타셨도다” 하였더라. (마태는 이 기록을 스카랴의 예언과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다 )
스카랴 9:9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오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지르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지니셨고, 겸손하시며 나귀를 타시니 나귀의 새끼인 어린 나귀니라.
스카랴는 예수님 입성을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이 기록되기까지 약 400년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이자 제사장인 스카랴는 구약의 마지막 두 선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바빌론 포로 생활 중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남은 자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스카랴는 기원전 500년에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
은 30 닢에 배반자 가롯유다, 그리고 십자가 처형을 예언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노라”, “나는 내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았노라”,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 처형은 성 좋은금요일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였습니다. 또한 나귀와 어린 나귀 새끼를 통해,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이행, 혹은 구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의 이행을 엿볼 수 있습니다. 늙은 나귀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의 대부분 동안 예수님을 태우고 가다가, 성 안으로 입성할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로 옮겨 타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순종하셨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6그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마태복음 21:7 그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나귀들 위에 자기들의 옷을 얹고 그 위에 주를 태우더라.
마태복음 21:8아주 큰 무리가 자기들의 옷을 길에 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더라.
많은 군중이 그분을 환호하며, 자기들의 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깐 채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로 인정합니다. 이 승리의 입성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순간 이전까지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셨으나, 이제는 이를 허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사역을 수행하심으로써,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유대인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의 추가적인 갈등을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반대자들이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방식이 지닌 이 강력한 메시아적 함의를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유대 백성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어떻게 약화시킬지 알았던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 길에 깔린 옷과 종려나무 가지, 그리고 군중의 환호 소리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군중을 조용히 시키라고 재촉하자, 예수님은 “그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우리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아끼면 안되는 뜻을 애기합니다.
누가복음 19:40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이 침묵을 지킨다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고 하시더라.
예수님은 조롱을 받으시지도 않으실 것이며, 비록 빛나는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탄 기사가 아니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영광의 독생자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찬미할 때, 우리는 영과 진리로 찬양하고 경배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는다면, 이 성경 구절이 일러주듯이 바위들이 즉시 소리 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발밑에 있는 바위와 돌들이 움직이는 지진을 겪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설 때마다 언제나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구세주 예수님을 찬양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요. 아멘!
마태복음 21:9 그 무리가 앞서 가고 뒤따르며 소리질러 말하기를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이 있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하더라.
마가복음 10장 46-52절을 성 금요일에 묵상하세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벳파게에 도착하기 전, 그들은 여리고를 떠났고, 티마오의 아들인 눈먼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께 소리쳐 말했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아들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다윗의 아들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눈먼 맹인 바디메오가 예수님께 말하되, 주여,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즉시 바디매오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길을 따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아멘.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이 있나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호산나!”라고 외치는 이 무리들. 사실, 7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군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이 모든 사건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지극히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시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 주간에 일어난 일들의 결과에 훗날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불법적인 재판, 부당한 판결, 그리고 잘못된 형벌. 이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눈먼 바르티매오처럼 “예수여,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순종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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